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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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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

이게 왠 뜬금없는 선언인가.

일상적으로 우리는 픽션을 이야기할 때 그러한 언급을 자주 하곤한다,

꾸며낸 이야기, 짜고치는 고스톱, 즉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그러나 이 <영화는 영화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뒤집는 반어적 제목이다.  

고쳐 말해 영화는 영화일 뿐만 아니라, 현실과 그 고리가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폭력'이라는 사건 혹은 행위를 통해 인물들은 분주하게 영화와 현실사이를 오간다.

진정한 '실제'는 무엇인지에 관해 반복적으로 의문을 던지지만,

영화와 현실이 혼재된 상황 속에서 경계는 이미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배우와 깡패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모습의 '폭력'이

본질적으로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에 관한 질문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앞에서 언급한 제목의 의미는 결말부분에 가서 뒤집히게 되는데

즉,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의 모습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중적 함의를 가진 제목은 그러므로 간결하지만 의미심장하다.

비장하고 심각하며 어두울 것만 같았던 포스터 이미지와는 다르게

따뜻한 장면도 있고 대체로 유머감각이 있는 작품이었다.

물론 거의 유머 코드의 대부분은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배우들의 눈치를 보는

봉감독의 익살스러운 장면에 있지만, 세밀하게 배치된 대사들에게서도 드러난다.

태생이 외로운 것인지, 외꺼풀의 예리한 눈매 때문인지 몰라도

소지섭의 얼굴에는 '쓸쓸함'의 매력이 있다.

그의 긴 손가락만큼이나 가느다란 실루엣은 그러한 매력을 증폭시키며,

그가 늘 검은 수트를 입고 화면에 보여지기만 해도 고독할 준비가 된다.

그에 반해 강지환은 어떠한가.

'금순이'의 아저씨였던 시절부터 그는 말끔하고 도시적인 외모에도 불구하고

어눌한 연기와 경박한 음색으로 늘 아쉬움을 주던 사나이였다.

하지만 그러한 아쉬움이 <영화는 영화다>에서는 장점으로 승화된다.

강지환이 맡고 있는 '수타'라는 캐릭터는 경솔하고 비겁하며 건방진 스타다.

그의 음색은 이러한 캐릭터의 완성에 결정적 도움을 주고 있다.

얄밉게 깐죽대는 수타 때문에 소지섭이 연기한 과묵한 '강패'의 눈빛은

더 깊은 명암으로 다가오며, 흑과 백의 대조된 의상으로 가시화된다.

이렇게 다른 성격은 서로에 대한 경계와 동경하는 감정 사이,

대립과 봉합의 과정을 보여주는 데 일조하며 작품 전체를 흥미롭게 이끈다.  

김기덕의 조연출로 시작해 첫 데뷔작을 선보인 장훈은 김기덕의 각본을 선택했지만,

김기덕보다 더 섬세하고 세련된 터치감을 지니고 있다.

물론, 가족용 주말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노골적인 작명같은 부분은

김기덕에게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큰 기대를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우들의 움직임에는 역동적인 활력이 있고,

신인 감독의 덜 연마된 연출은 동물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신선하다, 기대 이상이다.